2017. 4. 13. 01:31
더불어 사는 세상 이야기
교수님께 판 글감
곡우(穀雨) 아침부터 봄 가뭄을 적시는 단비가 내린다. 아파트 뒤편으로 흐르는 실개천에 황톳물이 제법 붉다. 4월 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야했던 산불 발생 보도는 장롱에 들어갔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기 전까지는 듣지 않아도 되리라.
전날 반팔티셔츠를 입고 외출을 하며 지난 달까지만해도 눈이 내리더니 봄도 없이 벌써 여름이 왔다며 투덜거렸는데, 오늘 내리는 비는 우산 없이 맨몸으로 맞기에는 여전히 차갑다.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채소장수 할머니는 오늘도 장사를 나가려는지 빗속에 서 있는 수레까지 그 차가운 비를 맞고 왔다 갔다 하며 채소를 쟁여 담고 있다.
밤늦게 학원 강의를 마치고 들어오면 항상 그 시간에 저만큼 앞서서 상반신을 뒤로 젖힌 채로 빈 수레를 힘겹게 밀고 가던 그 할머니다. 봄비 치고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은막에 비친 낡은 필름의 흐린 영상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몇 해 전의 일을 떠올린다.
그 날도 교수님과 교수님 연구실에 있던 학부생을 태우고 문산의 어느 아구탕집으로 가고 있었다. 맑은 날 같으면 가좌동에서 호탄동을 지나 문산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국도를 지날 때 차창을 내리고 찔레꽃 향기에 취해 탄성을 질러대었겠지만 그날은 비가 오고 있었기에 창문을 열 수 없어 찔레꽃은 그저 향기 없는 하얀 꽃일 뿐이었다. 비에 젖는 하얀 꽃이 애처롭다고 여기며 문산읍으로 들어섰다.
“저런 할머니들 보면 평생을 김밥 팔아서 모은 전 재산이나 폐지를 팔아 모은 수 억 원을 어느 대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할머니들이 생각납니다. 김밥이나 폐지 팔아서 수 억 원을 만들려면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참 대단한 일이죠. 그런데 대학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그 장학금 받아 우수한 성적에 대학 졸업해서 판사 검사 되고 의사 변호사 되면 모두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일하지, 없는 사람들 위해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차라리 똑 같이 김밥 팔고 폐지 줍는 다른 노인들 - 그들 대부분은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빗물 새는 지붕 하나 고치지 못하고 하루 세 때 끼니 이을 걱정부터 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부했으면 얼마나 좋게 쓰였겠습니까?”
팔고 사고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글감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이런 것도 지적 재산권에 들어가나 하는 의아심에 머뭇거리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재차 물으셔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주문했던 아구탕이 나와서 그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이 났지만 어쨌든 그 날 점심값을 교수님이 내셨으니 그 글감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교수님께 넘긴 셈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여섯 해가 흘렀다. 교수님은 그 내용으로 글을 쓰시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광경만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계셨던지 오랜 만에 찾아뵈었던 지난 겨울에도 그 이야기를 언급하셨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해서 안 아픈 사람이 병원을 찾을 리 없고, 한 개면 족한 휴대폰을 값이 싸다고 두 개 세 개씩 살 리도 없기에 결국 정해진 파이를 더 잘게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큰 조각을 가져가면 누군가는 작은 조각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심지어 누군가는 굶어야 하는 것이 바로 경쟁 사회인 것이다.
폐지를 주워다 팔거나 길거리에서 김밥을 파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폐지를 주워다 팔아야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은 여럿인데 배출되는 폐지의 양은 일정하다. 결국 내가 많이 주워다 팔면 다른 사람은 적게 주워간다. 물론 더 부지런한 사람이 더 많이 주워다 팔 수 있다. 그렇게 ‘더 부지런한 사람’은 부지런히 주워다 팔아서 수 억 원을 모았을 것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수 억 원을 모으는 동안에 폐지 줍는 일 외에는 달리 생계를 이을 길이 없는 ‘덜 부지런한 사람’들은 근근이 생존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정정당당한 경쟁이었으니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태 전, 어느 인터넷 신문에 한 대학교가 20여 년 동안 교내에서 김밥과 꽈배기 도넛을 팔아오던 김밥 할머니를 학교에서 내쫓았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김밥 할머니’들의 장학금을 가장 많이 받았을 그 학교가 내린 결정이 너무 몰인정하여 씁쓸했고, 김밥 파는 할머니의 처지를 같은 ‘김밥 할머니’가 몰라주는데 어느 누구에게 기대할 수 있겠나 하는 마음에 더욱 씁쓸했다.
이틀을 끌며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실개천의 황톳물은 맑아져 있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돌아오는 길 저만치서 채소장수 할머니가 손수레를 밀며 마주 온다. 할머니의 곱게 화장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 할머니는 적어도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어 가면서까지 돈 모아다 대학에 기부할 할머니는 아닐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교수님께 팔았던 글감으로 글을 써버렸다. 지적 재산권을 가진 교수님의 허락도 없이 글감을 사용했으니 벌금을 물어야 할까? 벌금을 물어야 한다면, 교수님과 자주 가던 풍어횟집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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