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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의 이우완
이우완은 창원시의 외곽에 위치한 내서읍에서 13년간 작은도서관, 마을학교, 주민회, 생협 등의 지역공동체 운동을 해 오다가 2018년 6.13지방선거에 출마하여 창원시의원으로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시작했고, 2022년 재선의원이 되었습니다. 이 블로그는 이우완의 의정활동을 시민들께 보고드리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소통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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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10. 14:35 아들과 함께 걷는 길

공룡발자국 화석하면 고성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고성에 공룡발자국 보러 아들 데리고 갔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고장에도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난 겨울 방학 때 아들과 함께 탐사를 나섰습니다.

마산회원구의 내서읍에서 살게 된 지 이제 8년째입니다. 그 동안 여러 사람들로부터 대략 어디쯤에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는 얘기만 들어 왔지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고 어떻게 찾아가면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듣지 못해서 우선 찾아가는 길부터 알아야 했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더니, 저보다 먼저 다녀와서 글을 남긴 분이 몇 분 계셨습니다. 어린이 체험단 굴렁쇠 대표이신 한중권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오신 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찾아가는 길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아서 일단 부딪쳐 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9살이 된 아들과 함께 집에서 자동차를 타고 5분 가량 가서 내서농산물도매시장에 주차를 하고 주변을 살폈습니다. 오는 도중에 '기분좋은 안경점'에 들러 지역 토박이인 사장님에게 몇 가지를 물어서 입구근처는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가 첫번째 입구. 왼쪽에 보이는 야산 뒤편에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내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마산대학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부분에 주유소가 있고, 그 주유소에서 오른 쪽 전방을 바라보면 '화룡사' 이정표가 있습니다. 그 이정표 뒤에 보이는 야산의 뒤편에 공룡발자국 화석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길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른쪽은 고속도로 나들목이 있고, 산비탈이 끝나는 지점부터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갈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무작정 산을 넘기로 했습니다.

별로 높지 않아 보여서 넘기로 마음 먹었는데.

경사가 심하고 낙엽이 쌓여 있어서 매우 미끄러웠다.

별로 높진 않아 보여서 어린 아들도 산을 넘는 데는 그렇게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경사가 60도가 넘는 데다가 낙엽까지 많이 쌓여 있어서 너무 미끄러웠습니다. 세 발짝 올라가면 두 발짝 미끄러지는 것을 반복한 끝에 결국 산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산 아래로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지팡이 짚고 기어가다시피 산을 오르고 있다.

 

저렇게 약 15분을 기어서 산 정상에 도착하니 내서 나들목과 그 너머의 호계마을까지가 눈 앞에 광활하게 펼쳐졌습니다.

저기 멀리 코오롱하늘채가 보인다. 공룡발자국 화석은 경사진 암반의 아래쪽에 있다.

 

드디어 찾았습니다. 발 아래 펼쳐진 암반의 아래쪽 부분에서 어렵지 않게 공룡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암반이 넓게 펼쳐진 위쪽에서는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일정한 방향을 향해 걸어간 공룡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발자국의 크기와 보폭을 봐서는 그렇게 큰 공룡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코끼리보다 작은 사이즈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형민이가 공룡 발자국을 따라 걸어 보고 있다. 암반이 삭아 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약 1억년 전 백악기 때의 공룡으로 이구아나룡과에 속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표지판에도 나와 있듯이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혀 관리나 보호가 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접근성까지 떨어지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는 안내판.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입구 계단 설치를 위한 예산이 책정되어 올해 집행된다고 합니다. 계단이 설치되어 접근성이 좋아지면 어린이들의 체험 학습장으로 많이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되짚어 나오며 찾은 길

안내판 아래쪽으로 길이 희미하게 나 있어서 내려올 때는 쉽게 내려왔습니다. 입구를 거꾸로 되짚어 나오니 의외로 찾기 쉬운 길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안내판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고속도로 나들목 고가도로 옆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내려와 내서 요금소 방향으로 20미터 직진.

 

바로 여기가 포인트다. 산자락에 가려 있어서 틈이 있는지 몰랐는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틈이 있다.

 

여기서 봐선 틈이 안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다.

첨부한 사진의 순서를 거꾸로 보면 들어가는 길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원시에서 예산을 들여 계단을 설치한다고 하는데 이 방향이 가장 유력해 보입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전 국민이 세월호 침몰사고의 슬픔에 빠져 있는 틈을 타서 새누리당은 KBS 수신료를 4,000원으로 인상하려고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에 기습 상정하였다가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단독처리에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KBS의 수신료는 월 2,500원입니다. 금액만 놓고 봐서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KBS가 보이는 행태를 봤을 때 그 돈도 아깝다는 반응을 보이는 국민이 대다수입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공영방송의 생명인 공정성을 잃고 정권의 홍보방송국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들어왔습니다.

게다가 이번 세월호 참사 초기부터 보여온 보도행태는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기에 충분했습니다. 마치 좋은 취재 거리나 생긴 듯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서는 정부의 발표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할 뿐이었습니다. JTBC를 제외한 대부분의 방송사가 매한가지였지만, KBS는 그 정도가 가장 심했습니다. 그 일례로, 유가족들이 칸막이 시설도 없는 체육관에서 숙식을 하는 동안, KBS 기자들은 호텔급인 국립남도국악원에서 무료로 숙식했다가 들통이 난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오직 대통령의 안위와 지지율, 그리고 시청률만 생각하는 저들의 유전자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들이(한선교를 비롯한 새누리당과 그 나팔수인 KBS) 수신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하는 명분은 무엇일까요? 현재의 수신료가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과 광고 없이 국민의 수신료만으로 공영방송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먼저, 수신료가 34년째 그대로 묶여 있다는 것과 관련해서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34년 동안 2,500원으로 전혀 인상이 없었다는 듯이 말하고 있지만, 실제 KBS가 징수한 수신료는 9배 증가하였으며 광고수익은 15배 증가하였습니다. TV수상기가 전 가정에 보급되어 수신료 징수 대상이 늘었고, 수신료를 전기세에 병기하여 부과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마치 34년 전의 수준으로 지금의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2100억의 광고수익을 줄여 공영방송을 이루겠다고 하는데, 이미 공영방송에 대한 의지가 없는 저들이 2100억 원이나 되는 광고수익을 줄이겠다는 의도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KBS가 상업광고를 하지 않게 되면 KBS로 오던 2100억 원의 광고가 어디로 갈까요? 바로 채널A, TV조선, JTBC 등의 종편으로 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KBS, MBC에 이은 정권의 서자들에게 그 혜택을 돌리겠다는 것입니다.  

이상의 이유로 저는 KBS 수신료 인상에 동의할 수 없으며, 오히려 KBS 시청을 끊고 수신료로 1원도 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방송 수신료 관련 법에는 KBS를 보든 안 보든 TV수상기가 있는 가정에서는 의무적으로 수신료를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수신료 거부하는 방법으로 몇 가지가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능한지 검증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저희가 1년 정도 수신료를 끊었던 경험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아이 교육상 진짜로 TV를 없앴던 경우이지만, 굳이 없애지 않더라도 통용되는 방법입니다. 특히 아파트 거주자들에게 유용한 방법일 것입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하여 아이 교육상 텔레비전을 없애기로 했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면서 사실 여부를 파악하려고도 하지 않고 바로 조치를 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달부터 수신료 2,500원과 아파트에서 단체로 가입한 케이블 방송 시청료 3,300원까지 관리비에서 삭제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케이블 방송까지 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때는 아파트에서 단체로 가입한 케이블 방송 말고 다른 인터넷방송을 신청하여 보면 됩니다. 물론, 보기 싫은 KBS만 빼고 보면 되겠죠.

아파트마다 또는 지역마다 사정은 다를 수 있으므로 먼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알아보고 나서 안 되면 아래 그림처럼 한전에 요구하면 될 것입니다.

한전에 전화해서 처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4. 5. 8. 00:34 DIY 목공 이야기

첫 작품이었던 스텝스툴을 다시 만들어 보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나무로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지만, 나무가 그렇게 흔하지는 않았었죠. 고작해야 톱 들고 산에 가서 지름 30미리 정도의 아카시나무 잘라다가 얼레나 만드는 것이었죠. 겨울철이 되면 마루 밑에 있는 나무토막 주워다가 썰매라도 하나 만드는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기분이었답니다.

기회가 되면 목공예를 배워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돈 드는 취미생활 따위는 엄두도 내지 못했답니다. 그러다가 아는 형의 친구분이 목공방을 운영한다는 얘길 듣고는 가슴 저 밑바닥에서 잠들어 있던 해묵은 꿈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더군요. 연회비가 적지는 아니었지만 ‘나를 위해 이 정도는 투자하자.’는 생각으로 목공방에 등록을 했었답니다.

4주간 기본교육을 받으며 3단 CD장, 4칸 꽂이통, 1인용 좌탁 등 세 가지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면 되는데 제가 선택한 첫 작품은 저희 도서관에서 사용할 스텝스툴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이 밟고 올라가서 책장 높은 곳에 꽂힌 책을뽑을 수 있도록 하는 용도입니다.

2012년 6월에 만든 첫 작품인 스텝스룰. 숲속마을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각재보다는 판재를 잘라서 만들다보니 무게가 많이 나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들이 이리저리 들고 옮기며 사용하기보다는 한 곳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어떨 때는 화분 받침대로 활용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아이들이 걸터앉아 책을 읽는 의자로도 활용되더군요.

튼튼해 보이기는 한데 둔해보이는 첫 번째 스텝스툴.

 

올해 3월경에 아들 데리러 미술학원에 갔다가 아주 가벼워 보이는 스텝스툴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구입하였다고 하는데 매우 쓸모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마침 이웃 도서관에서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스텝스툴과 3단 서랍장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만들어 보겠다고 했습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필요 없는 부분을 최대한 생략했습니다. 24T 판재를 40미리 폭으로 잘라 프레임을 짰습니다.

판재가 아닌 24*40 각재로 짠 프레임.

 

프레임 연결은 장부맞춤으로 하는 것이 튼튼하겠지만, 그때는 장부맞춤을 배우지 못했던 때였기에 어쩔 수 없이 피스로 연결했습니다. 그래도 힘을 많이 받는 발판 부분에는 부재를 덧대어 보강을 해주었습니다.

힘을 많이 받는 부분이라 부재를 덧대었습니다.

 

발디딤판도 너무 크지 않고 약간의 여유만 있을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습니다. 상판까지 결합하고 나니 제 머리속에 있던 스텝스툴이 그대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참, 저도 목공을 배우고야 알게 된 것인데요, 보통은 다 만들고 나서 칠을 하고 마감재를 바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재단하고 샌딩(사포질) 후에 바로 스테인과 마감재를 바른답니다. 다 마르면 조립을 하는거죠. 조립 후에 마감재를 바르기도 하는데요, 그랬을 때는 구석진 곳에 얼룩이 많이 남게 됩니다.

완성된 모습. 수성페인트를 칠하고 무광 바니쉬를 두 번 발라주었습니다.

 

이틀 걸려서 완성된 스텝스툴을 저희 아파트에 있는 책사랑내서마을도서관에 배달을 했더니 사서선생님도 만족을 하시네요. 책 보던 아이를 모델로 설정샷도 한컷 찍어보았습니다. 높이도 무게도 딱 맞네요.

여긴 내서마을도서관. 아이가 입고 있는 외투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난 3월에 만든 것을 지금 올립니다.

아직 3단 서랍장이 남았죠. 다음 번에는 저를 짜맞춤 가구의 묘미에 푹 빠지게 한 3단 서랍장 제작기를 올려 보겠습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4. 5. 6. 16:14 좌충우돌 작은도서관

MBC경남 <라디오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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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광장.m4a

라디오광장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청취자분들을 연결해서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권의 책을 소개 받고

이야기를 나눠 보는 시간인데요. 

오늘은 한 마을 한 책 읽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

이우완 관장을 만나보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1> 한 마을 한 책 읽기 운동, 어떤 운동인지 소개 좀 해주시죠?  

네, 한 마을 한 책 읽기 운동은 한 지역사회에서 일정기간에 걸쳐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공통된 문화적 체험을 공유하는 대중 독서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1998년 미국 워싱턴주의 시애틀공공도서관에서 시작되었구요, 2001년 시카고공공도서관에서 ‘원북 원시카고’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후, ‘한 책, 한 도시’라는 이름으로 세계 여러 나라로 전파된 운동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펼치게 된 ‘내서 한마을 한책읽기’는 두 권의 책을 어린이와 어른이 나눠서 읽게 됩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한책’은 남찬숙 작가의 <할아버지의 방>이 선정되었구요, 청소년과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한책’은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이 선정되었습니다.

마을도서관과 학교도서실, 그리고 규모가 큰 병원의 문고 등에 비치를 해두었고, 서점에도 한책코너를 따로 마련해 두어 지역주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2014 내서의 책]으로 선정된 두 권의 책.

 

[내서 한마을 한책읽기] 추진 선포식

 

[내서 한마을 한책읽기]를 대대적으로 벌여나갈 작은도서관 일꾼들.

 

 

2> 지역 독서문화에 굉장한 활기를 불어넣을 것 같은데,

토론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하네요.

네, 선정된 책을 읽은 독자들이 토론에 참여하는 방식은 직접 도서관에 모여서 다른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과 인터넷 카페를 통해 다른 독자들을 만나는 방식이 있습니다.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저희 지역에 있는 네 개의 작은도서관에서 다른 독자들과 토론할 수 있도록 토론회를 마련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네이버 카페에 토론방이 마련되어 있어서 언제든 자신의 의견을 올리고 다른 독자의 의견도 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여름방학 때 1박2일의 도서관캠프를 통해 토론과 다양한 독후활동을 할 수 있구요, 한책읽기와 관련된 야외영화상영과 초청강연 등을 통해서도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3> 저희가 매주 이 시간마다 책 한권을 소개 받고 있거든요.

이우완 관장님은 어떤 책을 소개해 주실까요? 

제가 소개해 드릴 책은 국제 정신분석학자로 유명한 이무석 교수의 <30년만의 휴식>입니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저자가 정신분석을 통해 환자를 치유해 왔던 경험을 들려주면서 현대인들이 각자의 무거운 심적 부담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휴’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는데요, 30대에 이미 중견기업의 이사에 오를 정도로 유능했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못했던 ‘휴’가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마음속 아이’를 발견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심리치유와 육아의 길잡이가 되었던 [30년만의 휴식]

 

4> 이 책을 소개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그 첫째가 바로 어린 시절의 상처와 화해하게 되어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요, 저희 아들이 일곱 살 무렵이었을 때, 어린 아들과 다투고 있는 저를 종종 발견했습니다. 어린 아들의 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맞대응하며 다투게 했던 것이 바로 제 ‘마음속의 아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죠. 어렸을 때 어리광도 부리고 투정도 부려보고 싶었지만 엄격한 가정 분위기 때문에 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나머지 무의식으로 고착되어 버린 ‘성난 아이’가 제 내면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들이 투정을 부릴 때 제 마음 속의 ‘성난 아이’가 튀어나와서 아들과 다툰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죠. 그 이후로는 아들과 다투지 않고 어른으로서 아들의 투정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제 아이도 그 나이에 맞는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또 다른 ‘마음속의 아이’를 만들게 되어 어른이 된 아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게 될 거라는 걸 알게 되어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아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제 마음을 치유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육아의 길잡이가 되어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 한구절만 직접 소개를 해주시죠.

“특히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의 5분이 아주 중요하다. 하루 종일 엄마의 사랑에 굶주린 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안기고 싶어한다. 그런데 일하는 엄마들은 집에 도착했을 때 집안일이 먼저 보인다. 그래서 아이를 안아 주거나 아이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 주기보다 집안일을 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그때 아이는 심한 좌절감을 느낀다. 5분이면 된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먼저 아이와 충분히 스킨십을 하고 말도 걸어 주어 엄마가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아이는 짧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이 구절은요, 맞벌이로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하는 요즘의 부모들에게 좋은 지침이 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에게 많은 재산과 좋은 스펙을 물려주기보다는 높은 자존감을 심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녀의 높은 자존감은 부모와의 애착관계를 통해 형성될 수 있다고 봅니다.

 

6> 우리 지역에 이렇게 마을도서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참 보기 좋은데요,

지역민들에게 마을도서관 이용팁을 소개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네, 먼저 자녀를 키우는 주부들께서는 평일 오전을 잘 활용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을도서관의 주 이용층인 초중등학생들이 학교에 가 있을 시간인 오전에는 마을도서관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퀼트, 넵킨아트, POP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취미활동도 하고, 많은 이웃도 사귈 수 있습니다. 특히, 새로 이사를 와서 이웃을 사귀고 싶으시다면 마을도서관을 자주 찾아가시면 됩니다. 마을도서관은 책만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소통이 있는 곳입니다. 소모임을 만들어 이야기도 나누고, 점심시간이면 각자 나물 한 가지씩 가져와서 함께 비빔밥을 해 먹을 수도 있는 곳이 마을도서관입니다.

그리고, 오후 시간대에는 유아나 초등학생을 위한 방과후 프로그램이 요일별로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으니 잘 활용하시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시골살이 하루 체험기 

아버지 생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 초순이면 해마다 저희 여섯 남매는 고향집에 모입니다. 이때가 저희 고향인 남해는 가장 바쁜 농번기이기도 합니다. 남해의 특산물인 마늘쫑, 땅두릅, 고사리가 모두 이때 나오기 때문입니다.  

새벽 4시 50분. 어제 다듬어 박스에 넣어둔 땅두릅을 공판장에 내어야 했습니다. 아직 캄캄한데도 일찍 내다 놓고 밭에 일하러 가셔야 한다고 해서 제 차로 실어 가기로 어젯밤에 얘기가 되었습니다. 뒷좌석을 접고 땅두릅 상자 50개를 실어다가 이웃마을에 있는 공판장에 내려놓고 옵니다.

 

남해군 고현면 포상리에 위치한 땅두릅 공판장에 땅두릅을 출하했다.

 

남해에서도 특히 저희 포상리(포상마을, 선원마을, 천동마을을 포상리라 함)에서 많이 재배하는 땅두릅은 나무두릅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뿌리를 심어두면 4월경에 새순이 올라오는데 그 순이 바로 땅두릅입니다. 뿌리 주변에 북을 두둑하게 주면 새순이 하얗고 길게 올라와 부드러운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맛도 나무두릅과 많이 다르진 않습니다. 나무두릅이 씹을 때 약간 스펀지 씹는 느낌이 있는 것에 비하면 미감이 더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6시.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온 세상은 갖가지 새들의 노래로 가득 찹니다. 주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올빼미 생활을 하는 저로서는 자주 접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멜로디입니다.

새벽에 도착한 셋째 누나와 자형, 아침밥을 준비할 두 며느리, 허리 수술로 밭에 나가지 못하시는 어머니를 남겨놓고 모두 깨워서 밭으로 갑니다.올봄에 포크레인 불러서 넓힌 밭에 돌을 주워 내는 작업을 합니다. 웬만한 학교 운동장보다 커 보입니다.

 

밭가에는 찔레꽃과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어서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아버지 혼자 하셨다면 한 나절이나 걸렸을 일을 여럿이서 30분 만에 끝냅니다. 돌아오는 길에 고사리밭에 들러 고사리를 꺾습니다. 고사리는 어린 순만 꺾어야 하는데, 며칠 동안 부모님이 바빠서 못 꺾었는지 잎이 피기 시작하는 순이 많습니다. 그런 순은 질겨서 먹기 힘듭니다. 명절에 비빔밥을 먹다가 고사리나물이 너무 질겨서 먹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으시다면 왜 그런 고사리순은 꺾으면 안되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잎이 막 피기 시작하는 고사리를 아깝다고 꺾어서 팔면 그렇게 되는 거랍니다.

 

이렇게 두 시간 넘게 일을 마치고 와서 먹는 아침밥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경험자들만 아실 겁니다. 두 며느리가 차린 아침밥을 반주 섞어서(아침부터 술입니다.) 먹고는 마늘밭에 쫑대 뽑으러 갑니다. 마늘쫑은 뽑아서 가지런히 다듬어 2킬로그램 단위로 묶어서 공판장에 냅니다. 하지만 땅두릅과 고사리 하느라 마늘쫑은 뽑을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안 뽑고 그냥 두면 마늘이 굵어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마늘쫑을 다 꺾어서 버리게 됩니다.

 

 

저는 뭔가를 만든다고 열외 받았습니다. 목공에 재미를 붙이고는 몇 가지 공구들을 구입했지만, 작업할 공간이 없어 몸이 건질건질 하던 차에 아내가 이번에 시골 내려가서 만들어 보라며 라티스를 주문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나무와 공구를 챙겨서 갔었습니다. 순전히 수공구들만 가지고 하려니 시간이 많이 걸리더군요. 특히 전통 문살을 만들어야 하는데, 톱질하고 끌로 따내고 하는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삼겹살 구워 점심을 먹고는 여자들은 마늘쫑 다듬는 일을 합니다. 가져가서 장아찌 담그겠다며 가져갈 만큼씩 챙겨 넣더군요. 저희 아내도 챙기던 걸 봐서 올해는 마늘쫑장아찌를 먹을 수 있으려나 봅니다.

그리고, 남자들은 볍씨를 모판에 담는 일을 합니다. 김유정의 [봄봄]에서는 ‘모를 붓는다.’라고 했죠. 기계로 모를 심기 때문에 규격화된 모판에 고운 흙을 채우고 그 위에 소독한 볍씨를 골고루 뿌린 후 물논에 가져다 놓고 부직포를 씌우는 작업입니다. 시골 출신들은 ‘못자리 한다.’고들 합니다. 논이 적어서 모판 150개로 마무리합니다.

 

 

일하다가 남해를 빠져나가는 국도를 봤더니 차들이 꼼짝을 안합니다. 남해는 관광자원이 풍부해서 오늘같은 이런 연휴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길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는데...... 몇몇은 오늘 올라가야하는데, 길이 막혀서 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저녁 먹고 천천히 가기로 마음을 느긋하게 고쳐 먹습니다.

 

5시 30분경에 못자리 일이 끝나고 집에 와서 목공 작업을 계속하는데, 가슴팍이 너무 아파서 상체를 숙이지 못하겠네요. 결국 작업을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두고 정리를 합니다. 다음주에 다시 내려와서 마무리 해야겠습니다.

저녁 먹을 무렵이 되니 통증이 더 심해져서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너무 고통스럽네요. 결국 남해병원 응급실을 찾습니다. 4년 전에 가슴 통증으로 병원에 갔다가 10일 가량 입원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 병이 아닐까 걱정하며 사진도 찍어봅니다. 다행히 근육통이라네요.

 

아들 고등학교 진학하면 귀촌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하루 일하고 이렇게 아파 버리니 부끄럽기 짝이 없네요. 부모님은 일흔 셋이 넘도록 저렇게 버티고 있는데.

주사 맞고 약까지 먹고 나니 조금 낫기도 합니다. 새벽 일찍 시작한 하루였기에 오늘 하루가 엄청 길게 느껴집니다. 이제 고단한 몸을 누이고 좀 쉬겠습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4. 4. 22. 01:48 우리말 들여다 보기

오늘 모처럼 시골집(남해)에 내려가서 농삿일을 거들었습니다. 지금 남해에서는 땅두릅이 한창 출하되고 있고, 마늘쫑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밤 늦게 잘 때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바쁜 농번기입니다.

아침에 아들녀석 학교에 보내놓고 바로 고향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서 오늘 하실 일은 고추모종 1000포기 심는 것이었습니다. 두 분 다 일흔을 넘긴 고령일 뿐 아니라, 어머니께서는 지난 해 여름에 척추 수술을 받으셔서 엎드려 일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십니다. 마침 잘 맞춰 간 것입니다.

경운기에 실려 있는 고추모종. 한 판에 50포기씩 심어져 있다.

 

고추를 밭에 옮겨 심었더니 봄 햇볕이 너무 따가워 금방 시들시들해지더군요.

밭에 옮겨 심은 고추모종. 시들해져서 물을 주었다.

 

그래서, 심는 중간중간에 물을 떠다가 뿌려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파릇하게 살아나더군요.

다시 살아난 고추모종. 단원고 실종 학생들도 이렇게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생때같다, 생때같은 목숨

저렇게 다시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난 고추모종을 보면서, 진도 앞바다 차가운 물속에서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한 '생때같은 목숨'들이 생각났습니다. 세월호를 타고 꿈에 부푼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던 그 생때같은 아이들...... 그 아이들을 저 푸르고 싱싱한 고추모종처럼 다시 살려낼 수는 없을까요?

요즘 언론을 보면 마치 재방송을 보는 듯, 하루종일 똑 같은 장면과 똑 같은 내용만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수십 번씩 반복하는 말이 있습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은......"

왜 '생때같은'이라고 하는지 많이 궁금했었는데, 오늘 고추모종을 심으면서 그 궁금증을 해결했습니다.

네이버뿐 아니라 민중서림 국어사전 등에서도 '생때같다'의 '생때'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을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생때'가 '물에 불리지 않은 마른 때'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생때같다'는 '마른 때(생때)가 살갗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튼튼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끼워맞췄다는 느낌이 너무나 많이 드는 억척일 뿐입니다. 국립국어원이 질의응답 게시판에서 확인해 준 것이 있습니다. 1957년 이전에 간행된 조선어사전(국어사전)들에는 '생대같다'로 표기되었다가 그 이후부터 '생때같다'로 표기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때같다'의 '생때'를 '생대'의 된소리식 발음이 표기에 반영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는 '일수'가 '일쑤'로 바뀐 것처럼 국어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됩니다.

그러면 '생대'는 또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저~ 위에 파릇파릇하게 다시 살아난, 푸르고 싱싱한 고춧대(줄기) 보이시죠? 그렇습니다. 아직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은, 너무나 싱싱하고 튼튼한 식물의 줄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