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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의 이우완
이우완은 창원시의 외곽에 위치한 내서읍에서 13년간 작은도서관, 마을학교, 주민회, 생협 등의 지역공동체 운동을 해 오다가 2018년 6.13지방선거에 출마하여 창원시의원으로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시작했고, 2022년 재선의원이 되었습니다. 이 블로그는 이우완의 의정활동을 시민들께 보고드리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소통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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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4. 10:26 더불어 사는 세상 이야기

페이스북에서 원하지 않는 앱 초대를 차단하는 방법

페이스북을 하다보면 거의 매일매일 앱 초대를 알리는 창이 뜨죠? 그 중에서도 CallApp Contacts 라는 앱의 초대가 가장 많을 것입니다.  이 앱은 누군가로부터 초대를 받은 사람이 앱을 다운받아 실행하게 되면 그 사람의 페이스북 모든 친구에게 자동으로 초대장이 발송되게 되어 있어서 그 확산이 마치 '좀비'를 연상케 합니다. 초대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도 많은 친구로부터 초대를 받다보니 '이게 뭐길래 그렇게들 많이 초대하지?' 하며 앱을 다운받아 실행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찮은 앱 초대를 차단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요, 알고 나니 아주 쉽더군요. 함께 공유하고자 올립니다.

 

오른쪽 상단의 자물쇠 보이시죠? 그 옆의 역삼각형입니다.

먼저, 페이스북에 접속하셔서 오른쪽 상단의 자물쇠 옆에 있는 역삼각형을 클릭합니다.

 

 

'설정'을 클릭

그리고 위 메뉴 바가 나타나면 '설정'을 클릭합니다.

 

 

다음으로 '차단'을 클릭합니다.

 

 

차단하고 싶은 항목이 쭈욱 나오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웹 차단'에다 CallApp Contacts 라고 쓰면 됩니다. 영문 철자 중 몇 글자만 치면 자동으로 뜰 겁니다. 그러면 그것을 클릭해주면 끝납니다. 다른 앱도 같은 방식으로 차단하면 됩니다.

지금 바로 차단해 보세요. 페이스북이 더 유쾌해질 것입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4. 9. 29. 10:34 세상 비틀기

 

 

고다이바(존 클리어 작) - 백성들의 세금을 줄여주기 위해 옷을 벗은 채 시내를 돌고 있다.

 

  이 그림은 영국 화가 존 클리어의 <고다이바> 라는 그림이다.
  11세기 영국에 레오프릭 3세라는 탐욕스러운 영주가 있었나보다. 그 영주에게는 16살 난 아리따운 부인이 있었다. 그 부인의 이름이 고다이바. 남편인 영주가 백성들로부터 너무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바람에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자, 고다이바는 남편에게 백성들의 세금을 줄여 줄 것을 간청했다. 영주 레오프릭 3세가 거절했지만 고다이바는 몇 번이고 간청을 했다. 거듭되는 간청에 귀찮아진 영주 레오프릭 3세는 아내가 더 이상 백성들의 세금을 줄여달라는 말을 못 하게 하려고 묘안을 생각해냈다.
  "당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백마를 타고 시내를 활보한다면, 당신의 청을 들어주겠소."
  절대 들어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고다이바는 백성들을 굶주림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진짜로 벌거벗고 시내를 돌겠다고 했다. 이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외출을 삼간 채 창을 가리고 눈을 감아 고다이바의 숭고한 마음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물론, 엇질이같은 놈 하나쯤은 있었을 터. 'Tom'이라는 자가 몰래 엿보았다고 한다. 관음증 환자을 뜻하는 Peeping Tom 이라는 용어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1천여 년이 지난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다음달부터 담뱃값이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오른다고 한다. 그런데, 담배 1갑의 가격인 4,500원 중에서 세금이 무려 3,318원을 차지한다고 하니 사실은 담뱃값 인상이 아니라 '담뱃세' 인상인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민세, 자동차세...... 줄줄이 인상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현대국가에서 증세를 무조건 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금이 공평하게 부과되지 않는다면, 국가의 존재에 대해 회의하는 납세자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어떤 기사를 읽고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던 경험이 있다. 임진왜란은 온 민족이 일치단결하여 국난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배워왔는데, 조선왕조를 향해 칼날을 겨누고 달려들던 왜군 중에서 절반이 조선의 백성이었다는 기사를 본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조선시대의 조세제도를 보면, 토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양반계층은 조세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당시의 생산수단이라는 것이 고작 토지가 전부인데,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양반계층은 세금을 내지 않고 땅을 빌려 근근이 살아가는 상민들에게만 세금을 부과했으니, 그 불만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러니 조선왕이든 왜놈왕이든 백성들에게는 다 똑같은 '슈퍼 갑'일 뿐이었다. 그런 백성들에게 충성심이나 애국심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나 몰염치한 짓이다.

  이명박근혜 정부 7년이 흐르는 동안 일관되게 진행되어 온 조세정책은 '부자감세 서민증세'였다. 18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는 이명박 정부 5년간의 부자감세로 인한 세수감소가 100조에 달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종합부동산세, 상속세, 양도세, 법인세 등의 부자들에게 부과되는 직접세는 줄이는 대신, 자동차세, 담뱃세 등 서민들에게 더 많은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 간접세를 늘려 왔던 것이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간접세를 꼽으라면 부가가치세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거래에 10%의 세금을 부과하는 부가가치세를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사람이 공교롭게도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두 부녀(父女)의 얼굴 위로 왜군의 절반이 조선백성이라고 한탄하던 선조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고다이바가 되어달라고 하지는 않겠다. 고다이바의 숭고한 나신에 그 얼굴을 가져다 붙이는 상상만으로도 역겨운 일이다. 3류 찌라시처럼 풍문으로 돌고 있는 황색 스캔들만으로도 그가 여성이었음을 상기하는 데에는 충분하다. 

다만, 고다이바는 못 될 망정, 레오프릭 3세(고다이바의 남편)는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공감하신다면 공감하트 꾸~욱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4. 7. 28. 01:49 좌충우돌 작은도서관

도서관에서도 캠프를?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각종 단체에서 실시하는 수련회(캠프)가 아닐까요. 요즘은 학원이나 체육관 등에서도 캠프를 가는 곳이 많아서 아이들은 여름방학 동안 두세 번의 수련회 참가 기회를 갖게 되더군요. 그 중에서 이전의 경험에 근거해서 꼭 가고 싶은 곳과 가고 싶지 않은 곳을 정합니다. 아이들의 기준은 아무래도 '얼마나 재미있는가?' 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학부모 또한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아이를 보내도 좋을지 보내지 말아야할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세월호 사고나 지난해 여름 해병대 체험 캠프 사고로 인해 자녀를 캠프에 보내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용이 알차고 아이들도 좋아하는 캠프의 경우, 비용이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아이를 걱정 없이 맡길 수 있고, 집과 가까우면서 내용도 알차고, 비용도 부담스럽지 않은 그런 캠프는 없을까요? 그런 캠프를 찾으신다면, 작은도서관에서 실시하는 도서관캠프를 추천합니다.

<도서관에서 1박 2일! 마지막 일정이었던 공룡발자국 화석 탐사>

 

작은도서관에서도 캠프를 하느냐구요? 네, 모든 작은도서관이 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활성화가 잘 되어 있는 곳에서는 많이들 하고 있습니다. 저희 숲속마을도서관에서 실시한 도서관캠프 "도서관에서 1박~2일"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준비는 철저히

저희 지역에는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가 구성되어 있어서 작은도서관의 활동이 매우 활발합니다. 협의회에는 네 개의 작은도서관과 한 개의 주민단체(푸른내서주민회)가 가입되어 있습니다. 이번 도서관캠프는 협의회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내서 한 마을 한 책 읽기] 운동의 연장선에서 준비된 것입니다.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

네 개의 작은도서관이 모두 캠프를 실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있어서 두 도서관씩 묶어서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정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변두리에 위치한 내서읍은 남해고속도로 제1지선에 의해 삼계지구와 호계지구로 구분됩니다. 삼계지구는 숲속마을도서관과 이미지작은도서관, 푸른내서주민회가 함께 준비해서 숲속마을도서관에서 도서관캠프를 진행하기로 했고, 호계지구는 내서마을도서관과 하늘채문화의집이 함께 준비해서 하늘채문화의집에서 도서관캠프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협의회 전체 모임에서 전반적인 일정과 두 캠프에서 함께 준비할 것을 논의하고 업무 분담을 한 후, 각 캠프별 모임을 따로 가지면서 세부적인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참가 대상은 초등 고학년, 참가비는 1만원, 이불은 개인이 준비해 오는 것으로 정하여 참가자 모집 공고를 내었습니다. . 각 캠프별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20 명밖에 되지 않아서 금방 신청 마감이 되었습니다.

 

첫쨋날

 

<조별 모임 - 아직은 서먹서먹>

 

집결 시간인 6시가 되기 전부터 이불가방을 든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참가자들이 다 모이고, 미리 짜 두었던 조별로 아이들을 앉게 한 다음 서로 인사도 하고 자기 소개도 하며, 같은 조로서의 팀웍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도서관캠프 자료집>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에게 유익한 체험이 되게 하고자 자료집도 알차게 만들었습니다. 원할 경우 방학숙제로 학교에 제출해도 될 것입니다. 

 

<아이들이 직접 수제비를 만들고 있다>

 

<그럴싸한 수제비가 되었군>

 

<맛은 어떨까? 아이들 표정으로는....>

저녁 메뉴는 수제비였습니다. 사서 선생님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반죽과 야채로 아이들이 직접 수제비를 뜯어 넣어 만들었습니다. 요리하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즐거워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준비한 반죽이 많아서 다 먹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었는데,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더군요.

설거지할 그릇들은 잠시 쌓아놓고 독서퀴즈를 진행했습니다. 독서퀴즈는  '한책읽기' 선정 도서인 <할아버지의 방>을 미리 읽어오게 한 후, 한 조가 한 팀이 되어 조원들과 협력하여 답을 쓰도록 한 조별 대항 게임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성적이 낮은 두 조가 저녁 먹은 그릇의 설거지를 맡기로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반응이 무척 뜨거웠습니다.

 

<독서퀴즈 정답을 의논하고 있는 호계캠프 아이들>

 

<조원들이 협력하여 적은 답을 높이 들고 있다 - 호계캠프>

독서퀴즈에서 많이 맞힌 두 조가 간식을 먹는 동안 나머지 두 조는 설거지를 했습니다. 물론, 설거지를 하고 나서 간식을 나눠 먹었죠.

 

<책 찾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수업을 듣는 아이들>

 

<도서관에서 보물 찾기 - 수업에서 들은 대로 책 빨리 찾아오기>

 

<우리 조가 일등했어요~>

도서관캠프인 만큼, 도서관을 최대한 활용해야겠죠. 아이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 만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책 모서리 아래쪽에 숫자와 자음 등이 적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 등록된 책들의 고유한 청구번호입니다. 그 번호를 보고 책이 어디쯤에 꽂혀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답니다.

수업이 초등학생들에겐 다소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뒤에 이어질 게임과 관련된 거라서 그랬는지 아이들의 집중력이 대단했습니다. 20분 정도의 수업이 끝나고, 각 조별로 주어진 쪽지에 적힌 책 10권을 찾아오는 '도서관에서 보물 찾기'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이 읽고자 하는 책을 스스로 찾을 줄 알게 되었답니다.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여기까지 <1부>로 하고, 뒷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 하겠습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4. 5. 27. 01:08 세상 비틀기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쇼'에 이은 깜짝 개각을 발표했습니다. 예상 못 했던 것은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표수리(해임)였습니다. 국정원의 대선 불법개입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던 시기에도 살아 남았고, 있지도 않았던 '노무현 NNL 포기 발언'을 증명하려고 남북정상회담 기록을 공개했다가 야당의 뭇매를 맞았을 때에도 박 대통령의 신임은 흔들리지 않았죠. 박근혜 대통령의 남재준 원장에 대한 신임은 간첩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증거를 위조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대통령 자신에게 쏟아질 비난까지 감수하고 남재준 국정원장의 편을 들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까지 금석같이 신임해오던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이라는 카드를 국정원과는 별 관련도 없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래서 항간에 떠돌던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국정원 기획설'이 전혀 터무니 없는 유언비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보았습니다. 물론, 사실은 아니겠지요. 아무리 주군을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칠 족속들이라고는 해도 그런 지옥불에 떨어질 짓을 저질렀을라구요. 석연찮은 점은 있지만, 제법 센 카드를 제시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적어도, 다음날 남재준 후임으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후임으로 김관진 국방장관이 거론된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군 출신은 아니지만 황교안 역시 공안검사로서 정권 안보를 위해서는 간첩조작까지도 능히 해낼 위인입니다. 김관진요? 김장수와 일란성 쌍생아라 해도 무방한 인물입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개각은 또 하나의 눈속임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무총리 후보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지명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비판적 지지자들을 다시 붙들어 매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인사도 아닐 뿐더러 청빈하고 강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그의 대법관 퇴임 이후의 전관예우가 알려지기 전까지만이죠.

대법관을 퇴임하고 변호사 개업해서 5개월만에 16억을 벌었다죠. 전관예우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수익입니다. 결국 청빈과 강직이라는 이미지로 포장되어 있던 그의 알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렸습니다. 문제가 되자 지난 1년간 늘어난 재산 11억을 국가에 환원하겠다고 합니다. 국무총리라는 자리가 그렇게도 탐이 났나 봅니다. 머리가 아주 비상한 위인이니, 국무총리를 지낸 후 대기업 사외이사 등으로  벌어들일 수익이 더 클 것이라는 계산이라도 했던 것일까요?

 

김용민의 그림마당

그런데, 생각을 달리해 보면 이런 상상까지 가능합니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는 지난 대선때 박근혜캠프에 결합했다가 박근혜와 각을 세우며 자신의 소신을 내세우다가 이후 정부출범 당시에 입각하지 못함으로써 나름대로 깨끗하고 강직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박근혜가 그때의 앙갚음으로 안대희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리려고 총리직에 지명한 건 아닐까 하는 상상입니다. 관피아를 뿌리 뽑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청와대가 안대희의 전관예우를 몰랐을 리는 만무하고, 알고도 그를 추천했다는 것은 안대희더러 '욕 좀 봐라' 이거 아니었을까요?

지난 대선 후보 토론에서 자신에게 '다카끼 마사오', '청와대 금고 속의 6억' 등을 거론하며 모욕을 줬던 이정희 후보가 소속된 정당이 현재 어떤 보복을 당하고 있는지를 상기해본다면 충분히 개연성 있는 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4. 5. 19. 23:57 세상 비틀기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발표를 접한 나의 생각

 

 세월호의 유일한 구조자는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사고가 난 지 한 달 하고도 3일이나 지난 오늘,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한 명의 국민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한 정권이라 비난 받아왔던 ‘박근혜정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사과를 표명했으나 떠밀려 마지못해서 하는 사과라는 인상만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담화문을 읽으며 눈물까지 보여, 그동안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이미지를 벗어 던지는 듯했습니다. 오늘 보인 박 대통령의 눈물은 세월호 정국에서 물에 빠진 학생들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을 더 걱정했던 사람들에겐 가뭄을 해결할 세찬 소낙비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정홍보 방송으로 전락한 MBC, KBS, 종편방송 등에서 아무리 ‘대통령의 눈물’로 박비어천가를 불러댄다 하더라도 뻔히 보이는 진실은 가릴 수 없습니다. 

 

해경 해체? 눈 가리고 아웅 하기

박 대통령은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 지금껏 해경이라는 기관이 아무 하는 일 없었나요? 해경을 없애도 될 만큼 해경의 존재감이 없었나요? 일본이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독도를 지키는 것도 해경이며, 불법 중국어선을 단속하는 것도 해경입니다. 이런 업무를 군인이 하면 안 되는 것은 외교 및 군사적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해경을 해체하겠다는 말은 뭘까요? 경찰 체계 안으로 끌어들여 이름만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월호 실종자 구조 과정에서 보인 무능함에 대한 책임을 해경에 떠넘기되 실질적인 책임을 묻기보다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잠시 속이겠다는 것일 뿐입니다. 구조를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해경을, 철저한 조사나 책임자 처벌 없이 ‘해경 해체’라는 말만 무서운 솜방망이로 덮어버리려는 것입니다.

 

해외 순방? 지지율 높여주는 만능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로 일곱 번 해외순방길에 올랐습니다. 일곱 번의 해외순방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공식을 도출해 내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하는 동안 국내 언론에서는 박 대통령이 외국 정상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가보다는 박 대통령의 화려한 패션과 유창한 영어실력을 앞 다퉈 보도했고, 그 결과 귀국 후에는 반드시 지지율 상승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가 보여준 무능함에 분노한 민심이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이 불통이라는 이미지를 굳혀가면서까지 강경책을 써왔던 것은 60%를 넘는 높은 지지율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지율이라는 것이 여론을 얼마나 반영하는지는 모르지만 박근혜정부에겐 꽤나 든든한 우군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지지율이 50%선 아래로 떨어질 위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자꾸만 떨어지는 지지율을 보면서 ‘해외순방’이라는 카드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비난은 너희가 받고, 성과는 내가 챙긴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길에 오른 시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와대에 가장 크고 직접적인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은 KBS 보도 및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입니다. 김시곤 전 보도본부장의 폭로로 시작된 박근혜정부의 방송장악 의혹에 대한 분노는 KBS 양대 노조의 뉴스 제작거부로 이어지며 점점 더 격화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이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만 합니다.

또한, 지난 이틀에 걸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강경하게 진압하는가 하면 200여 명의 시민을 체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추모를 넘어 분노로 번지는 촛불시위는 더욱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들끓는 국내 여론을 뒤로 하고 대통령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도망치듯 해외순방길에 오르고 말았습니다. 방송장악과 침묵행진 강경진압에 대한 국민적 비난에서 벗어나려는 꼼수로 인식되기에 충분합니다.

앞서 일곱 번의 해외순방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되어버린 것 중에는 아직 말하지 않은 무서운 공식이 하나 있습니다. 국민의 저항과 비판을 받을 사안은 대부분 대통령이 순방길에 있을 때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유럽 순방길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청구안을 결재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순방기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마도 정국을 뒤엎을 만한 사건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꾸만 고개를 듭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4. 5. 17. 02:44 DIY 목공 이야기

아내가 제 몰래 주문한 옷걸이 반제품이 도착했습니다. 저도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공방에 가서 나무 재단해 와서 만들어 볼까했는데 이렇게 허접한 반제품을 주문해 버렸네요. 저는 코치만 하고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 조립해보라고 했더니 잘 해내네요.

네이버에 목공인들의 카페가 있어서 며칠 전에 '이케아 가구'에 대해 글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글의 요지는 공방에서 만들어 파는 원목 의자가 싸게는 7만원에서 10만원을 훌쩍 넘어가는데, 온라인에서 판매되고 있는 이케아 반제품은 의자 4개와 4인용 식탁까지 해서 12만원밖에 안 하던데 이케아는 왜 이케 싸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에 4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대부분은 이케아 제품은 유학생들이 유학하는 동안 싸게 사서 쓰다가 돌아올 때 버리고 오는, 퀄러티가 떨어지는 제품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면밀한 분석과 대책 없이 얕잡아 보다가는 모든 가구시장을 잃게 될 거라는 경계의 의견과 비록 목재는 저렴한 것을 사용할지라도 디자인은 소비자를 현혹할 만하며, 많은 소비자들이 이케아의 입성을 기다리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임을 잊지 말아야한다는 의견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조립한 옷걸이와 이케아 가구를 보며 종이컵이 떠올랐습니다. 당장은 싸게 사서 편리하게 사용하지만 잠시 쓰다가 이사갈 땐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지게 될 일회용품 말입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키워 목재로 사용하기까지 수많은 세월을 필요로 하는데, 이렇게 나무를 일회용으로 사용해도 되나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그랬듯이, 우리와 전통가구가 그렇듯이 한 번 만들면 대를 물려가며 사용되는 그런 진짜 가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반제품은 이런 형태로 배송이 되네요.

 

이렇게 가공이 다 되어 있어서 끼워 맞추고 나사만 조여주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가공 상태가 조잡해서 이렇게 깨진 부분도 더러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도 마치 레고 키마 조립하듯이 척척 해냅니다.

다 완성된 작품입니다. 정말 꼭 필요한 부분만 구성해 놓아 가구라기보다는 앙상한 뼈대 같습니다.

이 가구는 이케아 제품은 아닙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4. 5. 16. 01:47 자료실/문학 자료

2013년 10월 17일부로 발효된 저작권법에서는 저작재산권 보호기간을 '저작자의 사후 70년까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의 저작권법에서 '저작자의 사후 50년까지'로 규정하였으므로 1963년 10월 이전에 사망한 작가의 작품은 이미 저작재산권 보호가 해제되어 소급 적용이 되지 않으므로 자료실에 전문을 게재할 수 있습니다. (외국 작가는 사후 70년까지)

 

허생전

박지원

 

허생은 묵적골(墨積洞)에 살았다. 곧장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였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글을 읽어 무엇 합니까?"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쏘?'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운종가(雲從街)로 나가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변씨(卞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만 냥(兩)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하겠느냐?"

허생은 만 냥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안성(安城)으로 내려갔다. 안성은 경기도, 충청도 사람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삼남(三南)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대추 밤 감 배며, 석류 귤 유자 등속의 과일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칼, 호미, 포목 따위를 가지고 제주도(濟州島)에 건너가서 말총을 죄다 사들이면서 말했다.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다."

허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망건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허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물었다.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빈 섬에 닿았습지요. 아마 사문(沙門)과 장기(長崎)의 중간쯤 될 겁니다.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과일 열매가 절로 익어 있고, 짐승들이 떼지어 놀며,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

라고 말하니,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이르렀다. 허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들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단지 부가옹(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사공의 말이었다.

"덕(德)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덕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변산(邊山)에 수천의 군도(群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수색을 벌였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군도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허생이 군도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었다.

"천 명이 천 냥을 빼앗아 와서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일 인당 한 냥이지요."

"모두 아내가 있소?"

"없소."

"논밭이 있소?"

군도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땅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둑이 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아내를 얻고, 집을 짓고, 소를 사서 논밭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도둑놈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돌아다녀도 잡힐까 걱정을 않고 길이 의식이 요족을 누릴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할 뿐이지요."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도둑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 할 수 있소. 내일 바다에 나와 보오.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실은 배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허생이 군도와 언약하고 내려가자, 군도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튼날, 군도들이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허생이 삼십만 냥의 돈을 싣고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너희들, 힘껏 백 냥도 못 지면서 무슨 도둑질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이름이 도둑의 장부에 올랐으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백 냥씩 가지고 가서 여자 하나, 소 한 필을 거느리고 오너라."

허생의 말에 군도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이 1 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군도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허생이 도둑을 몽땅 쓸어 가서 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대(竹)를 엮어 울을 만들었다. 땅기운이 온전하기 때문에 백곡이 잘 자라서, 한 해나 세 해만큼 걸러 짓지 않아도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3 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 나머지를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長崎島)로 가져가서 팔았다. 장기라는 곳은 삼십만여 호나 되는 일본(日本)의 속주(屬州)이다. 그 지방이 한참 흉년이 들어서 구휼하고 은 백만 냥을 얻게 되었다.

허생이 탄식하면서,

"인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남녀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의관(衣冠)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엷으니, 나는 인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먹도록 양보케하여라."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

하고 돈 오십만 냥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

"바다가 마르면 주어 갈 사람이 있겠지. 백만 냥은 우리 나라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 하물며 이런 작은 섬에서랴!"

했다.그리고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면서,"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 했다.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은이 십만 냥이 남았다.

"이건 변씨에게 갚을 것이다."

허생이 가서 변씨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변씨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만 냥을 실패 보지 않았소?"

허생이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

하고, 십만 냥을 변씨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만 냥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변씨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변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허생이 남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늙은 할미가 우물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변씨가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허 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글공부만 좋아하더니,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부인이 혼자 사는데,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튼날, 변씨는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허생은 받지 않고 거절했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변씨가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변씨는 그 때부터 허

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 주었다.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변씨가 5 년 동안에 어떻게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허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조선이란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서,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무릇, 천 냥은 적은 돈이라 한 가지 물종(物種)을 독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 냥이 열이라,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보통 이(利)를 취하는 방법으로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대개 만 냥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수레면 수레 전부, 배면 배를 전부,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마치 총총한 그물로 훑어 내듯 할 수 있지요. 뭍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물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고, 의원의 만 가지 약재 중에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면, 한 가지 물종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모든 장사치들이 고갈될 것이매,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후세에 당국자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처음에 내가 선뜻 만 냥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허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만 냥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만 냥을 빌린 다음에는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변씨가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사대부들이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오랑캐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어 보고자 하니,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우성,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 같은 분은 적국(敵國)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물이었건만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반계 거사(磻溪居士) 유형원(柳馨遠) 같은 분은 군량(軍糧)을 조달할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저 바닷가에서 소요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의 집정자들은 가히 알 만한 것들이지요. 나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 내가 번 돈이 족히 구왕(九王)의 머리를 살 만하였으되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변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변씨는 본래 이완(李浣) 이 정승과 잘 아는 사이였다. 이완이 당시 어영 대장이 되어서 변씨에게 위항(委巷)이나 여염(閭閻)에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변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이 대장은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이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인은 그분과 상종해서 3 년이 지니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이다."

"그인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밤에 이 대장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변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변씨는 이 대장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허생을 보고 이 대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변씨는 이 대장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이 대장이 방에 들어와도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이 대장은 몸둘 곳을 몰라하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허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너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대장이오."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임금께 아뢰어서 삼고 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이 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허생은 외면하다가, 이 대장의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명(明)나라 장졸들이 조선은 옛 은혜가 있다고 하여, 그 자손들이 많이 우리 나라로 망명해 와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니, 너는 조정에 청하여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모두 그들에게 시집 보내고, 훈척(勳戚) 권귀(權貴)의 집을 빼앗아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이 대장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안 되고,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만주 정부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중국 민족과는 친근해지지 못하는 판에,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섬기게 되어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진실로 당(唐)나라, 원(元)나라 때처럼 우리 자제들이 유학 가서 벼슬까지 하도록 허용해 줄 것과, 상인의 출입을 금하지 말도록 할 것을 간청하면,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국중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그 중 선비는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또 서민은 멀리 강남(江南)에 건너가서 장사를 하면서,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저 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명나라 황족에서 구해도 사람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잘 되면 대국(大國)의 스승이 될 것이고, 못 되어도 백구지국(伯舅之國)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禮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辯髮)을 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허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그것이야말로 상인(商人)이나 입는 것이고,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번오기(樊於期)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武靈王)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넓은 소매의 옷을 고쳐 입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이 대장은 놀라서 이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튼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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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4. 5. 16. 01:17 DIY 목공 이야기

지난 번에 스텝스툴을 만들어 줬던 내서마을도서관에서 책상 아래에 놓고 사용할 3단 서랍장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올해 본격적으로 목공예를 배워볼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흔쾌히 승낙을 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하던 때여서 겁도 없이 공방 사부님께 이번에는 전통식 짜맞춤으로 서랍장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을 해버렸습니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내 것도 아닌 다른 이가 의뢰한 것을 만든다고 했으니 사부님도 많이 놀랐겠죠. 그래서, 안 보이는 서랍 세 개만 그렇게 하자고 한 발 물러섰습니다.

그때부터 약 10여 일에 걸친 맹 훈련이 시작됩니다. 사개맞춤을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합니다. 사개맞춤은 못이나 나사(피스)를 사용하지 않고, 접합 부위에 홈을 파서 서로 맞물리게 하는 기술입니다. 손가락으로 서로 깍지를 낀 것과 같은 모양이죠.

먼저, 간격을 잘 계산해서 선을 긋습니다. 이때 암장부와 숫장부를 잘 구분해서 잘라 낼 부분은 헷갈리지 않게 표시를 해 둡니다. 다음은 선에 맞춰서 톱질을 하는데, 초보인 저로서는 직각을 맞추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그리고, 톱이 들어가지 않는 부분은 끌과 망치로 조금씩 따냅니다.

아래 사진의 상단에 있는 것은 폐목으로 첫번째 연습을 해 본 것입니다. 처음 해본 것 치고는 그런 대로 잘 했다는 사부님의 칭찬에 힘을 내서 이번에는 연필꽂이를 만듭니다.  

사개맞춤 연습으로 연필꽂이를 만들고 있다.

 

점점 짜맞춤의 매력에 빠져듭니다. 급기야, 그동안 인터넷 공구몰에서 수도 없이 장바구니에 넣었다가는 결재를 포기하곤 했던 몇 가지 공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등대기톱과 끌을 일차로 구입했습니다. 2년 가까이 목공예를 배웠지만, 저의 개인 공구를 가져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처음으로 구입한 끌과 톱

 

한 땀 한 땀 장인 정신으로 장부를 따낸 다음, 사개를 맞추고 목공용 본드를 바른 후 클램프로 고정시킵니다.

목공용 본드를 바르고 조립을 한다.

 

죔쇠와 클램프로 압박하여 고정시킨 후 건조한다.

이렇게 몇 시간을 건조시키면 아래 사진처럼 튼튼한 연필꽂이가 됩니다. 밑판은 타카로 고정하는 방법도 있으나 배운다는 의미로 옆판 네 개의 면에 홈을 파서, 조립할 때 같이 끼워 넣었습니다.

사개맞춤으로 만든 연필꽂이.

 

이제 서랍장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부님의 청천벽력같은 말씀! 사개맞춤은 어느 정도 했으니 서랍은 주먹장맞춤으로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헉! 주먹장맞춤. 이건 사개맞춤보다 더 정교함을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맞물린 장부가 서로 빠지지 않도록 장부의 각을 경사지게 해서 조여주는 방식입니다.

일단 해보기로 했습니다. 사개맞춤을 해내었을 때보다 더 클 희열을 생각하면서...... 아래 사진에서 보이듯 앞의 사개맞춤에서 경사각을 주는 방식입니다. 사진상의 위가 암장부, 아래가 숫장부입니다.

암장부와 숫장부의 경사각과 폭이 정확하게 맞아야 한다.

 

이렇게 끌로 일일이 따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오직 인내력 하나로 꼼꼼하게 해내어야 합니다. 사개맞춤 연습부터 시작해서 주먹장맞춤으로 서랍 3개 만드는 데 꼬박 10일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서랍입니다.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삼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서랍을 넣을 서랍장 몸통을 만들 차례입니다. 지금까지는 짜맞춤 방식으로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몸통은 기존에 하던 대로 피스로 결합하기 때문에 하루만에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듯, 도색작업을 먼저 해서 건조시킨 다음에 조립을 합니다.

 

피스를 박을 때에도 나무가 갈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드릴로 먼저 구멍을 뚫습니다. 이때 이중기리를 이용하여 나사머리 크기의 구멍을 3~4미리정도 같이 뚫습니다. 피스를 박으면 나사머리가 나무 안쪽으로 약간 들어가게 됩니다. 이 구멍에는 목심을 꽂고 탄력이 좋은 목다보톱으로 높이가 같게 잘라줍니다.

피스 박은 곳을 목심으로 가려주고 있다.

 

다보톱을 바닥에 최대한 밀착하여 잘라야 한다.

이제 몸통 조립이 끝났습니다. 도색 작업을 빼면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네요. 다음은 서랍이 들어갈 자리에 철레일을 고정시키는 작업입니다. 이때는 안에 들어갈 서랍에 고정한 숫레일과 몸통에 고정할 암레일간의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위치 선정이 아주 중요합니다.

서랍 외부에 설치한 숫레일.

 

몸통 내부에 암레일 설치하기. 간격을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

서랍을 끼워서 간격이 맞는지 확인한 다음 앞판과 손잡이를 달아 줍니다.

 

 

 

대부분의 가구가 그렇듯이 3단 서랍장에서도 뒤판은 맨 마직막에 결합합니다. 뒤판은 자작나무합판을 주로 사용하는데, 가격이 비싼 만큼 단단하고 고급스럽습니다.

이렇게 해서 3단 서랍장이 완성되었습니다.  아빠 따라 공방에 놀러온 형민이는 마치 자기가 만든 것처럼 좋아하네요.

완성된 서랍장. 색칠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