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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서의 이우완
이우완은 창원시의 외곽에 위치한 내서읍에서 13년간 작은도서관, 마을학교, 주민회, 생협 등의 지역공동체 운동을 해 오다가 2018년 6.13지방선거에 출마하여 창원시의원으로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시작했고, 2022년 재선의원이 되었습니다. 이 블로그는 이우완의 의정활동을 시민들께 보고드리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소통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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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8. 3. 18. 00:02 의정보고서

내서의 새 일꾼 이우완,

창원시의원 선거에 출마합니다.

2006년, 개나리가 화사하게 핀 어느 봄날 강보에 싸인 아들을 안고 내서로 이사해 왔습니다. 내서라는 마을공동체가 함께 길러준 덕에 아이는 잘 자라서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습니다.


제 아이가 받은 마을공동체의 혜택을 더 많은 주민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주민단체 집행부로, 작은도서관 관장으로, 마을학교 교사로 활동해 왔습니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라는 지극히 당연한 헌법적 가치가 정치적 논리에 짓밟혔을 때는 학부모들과 함께 거리로 나서 피켓을 들었습니다. 박근혜를 비롯한 적폐세력들에 의해 국정이 혼란에 빠졌을 때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 촛불을 들었습니다.


내서에서 살아온 12년을 돌아보면서 이제 새로운 역할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작은도서관, 마을학교, 주민자생단체 등의 지역공동체 운동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고자 합니다.

더 이상 적폐정치가 우리 시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빼앗지 못하도록 정치를 바로 세우고, 시정을 어지럽히는 소수의 이익집단으로부터 시민들의 혈세를 지키는 감시자의 역할을 맡고자 합니다.

그런 역할을 맡고자 오는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창원시의원으로 출마합니다.


지역 활동가로, 사회 운동가로 살아왔던 지난 12년보다 더 열심히 발로 뛰며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내서 주민들께서 저를 내서의 새 일꾼으로 써 주신다면, 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내서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많은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 선거사무실은 삼계스포렉스빌딩 702호(친구가 좋은 사람들)에 마련하였습니다. 누구든 들러주시면 따뜻한 차로 반갑게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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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우리지역 교육공동체 내서마을학교'

                                                                 글 :  이우완( 숲속마을도서관 관장)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육아와 교육을 개인과 가정에만 맡기지 않고 지역공동체가 나서서 ‘우리 아이’로 키우자는 것입니다. 마을에서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랄 때 아이들은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자랄 수 있으며,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다시 공동체에 기여하며 아름다운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경남에서도 ‘마을이 학교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교육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지역이 늘고 있습니다. 행복교육지구로 지정된 김해를 비롯하여 창원의 마을학교가 대표적인 우리지역의 교육공동체입니다.

마을학교는 학교 교육력 제고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학교, 마을, 교육지원청, 지자체, 시민단체, 주민 등이 협력, 지원, 연대하는 교육공동체입니다. 창원교육지원청이 올해 초 마을학교를 육성하기 위해 공모한 ‘학교-마을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에 ‘내서마을학교’, ‘안골포마을학교’, ‘봉림동 행복한들마을학교’가 선정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안계초등학교, 안골포초등학교, 한들초등학교를 각각 거점으로 하는 세 곳의 마을학교는 각각의 특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내서마을학교의 사례를 소개하려 합니다.

내서마을학교의 태동은 1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지역의 뜻있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마을교육공동체를 꿈꾸며 모임을 시작했고, 지난해 6월 ‘우리동네 교육이야기-엄마들의 수다’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엄마들의 수다는 30여 명의 학부모들이 5~6명씩 모둠을 지어 자녀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월드카페로 진행되었습니다. 그해 10월에 ‘엄마들의 수다 2탄’까지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자신감이 붙자, 내서지역의 여러 단체와 인사들을 규합하여 ‘내서마을학교추진협의회’를 결성하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마을학교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안계초등학교와 함께 마을학교 육성사업에 응모하여 선정되자 그동안 꿈꾸어오던 마을교육공동체를 하나씩 시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초딩들의 수다’와 ‘중딩들의 수다’를 통해 마을학교의 주인공을 발굴하고, 그 주인공들이 바라는 마을학교의 모습에 대해 많은 의견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수다모임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여 스스로 만들어가는 모임이 되도록 배려하는 점도 잊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의견을 토대로 하여 내서마을학교는 크게 ‘주말배움터’, ‘덕후동아리’, ‘프로젝트팀’으로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주말배움터는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방과후교실이나 여타의 사교육과는 차별성을 두자는 원칙을 세우고 시작했습니다. 수다모임에서 나왔던 의견을 바탕으로 강좌를 개설하였는데, 목공교실이나 네일아트, 요리교실 등과 같이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지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던 프로그램 위주로 짜여졌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마을교사와 교육장소까지도 우리 지역의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여 진행했습니다.
덕후동아리도 아이들이 직접 계획하고 홍보하여 동아리 구성원을 모집하였으며, 운영규칙을 비롯해서 모든 운영을 아이들이 스스로 해나가게 했습니다. 각 동아리에는 그림자선생님이 한 명씩 붙어서 모임에 참여하였으나 말 그대로 그림자처럼 지켜보고 있다가 모임 장소 섭외나 간식비 지급 등의 약간의 도움만 주게 했습니다. 아이들은 현재 기타, 댄스, 영화제작, 애니, 농구, 볼링 등 10개의 동아리에 총 1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동아리로 시작했던 여행동아리와 맛집탐방동아리를 특화시켜 프로젝트팀으로 운영하였습니다. 주말 배움터와 덕후동아리에 비해 프로젝트팀의 진행은 더뎠지만 내용의 깊이에 있어서는 다른 동아리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 10여 명이 머리를 맞대고는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서로 협력하며 그 목표를 이루어 가는 방식입니다. 여행동아리는 부산의 감천문화마을탐방이라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각자의 능력에 맞게 업무를 나누어서 여행준비를 척척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답니다.
창원시 내서읍은 오래 전부터 주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오고 있어서 지역공동체에 대한 인식이 높고 단체들 또한 많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내서마을학교는 이런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작은도서관이 잘 조성되어 있고 매우 활성화되어 있어서 마을의 작은도서관을 활용하여 ‘초등도서관캠프’와 ‘청소년독서캠프’를 열었습니다.

초등도서관캠프는 내서마을학교와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가 함께 준비하여 숲속마을도서관, 이미지작은도서관, 하늘채문화의집 등 세 곳에서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각 도서관마다 20명의 아동들이 참가하여 직접 저녁밥을 해 먹고, 보드게임과 영화감상, 페이스페인팅 등을 하며 소중한 추억을 쌓는 경험을 했습니다. 청소년캠프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삼계대동작은도서관과 숲속마을도서관에서 진행했습니다.

덕후동아리와 주말배움터의 진행에는 그야말로 온 마을이 나서서 도와주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강당을 내어주었고, 종교시설, 태권도장, 도서관, 각종 사업장들까지 주말배움터와 동아리 모임장소로 공간을 제공해 주셨고, 마을교사와 그림자선생님, 그리고 내서마을학교 기획단으로 함께해주신 분들도 30여 명에 이릅니다. ‘마을이 학교다’라는 구호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내서마을학교의 1년이 저물어갑니다. 오는 12월 9일에는 ‘내서마을학교 1년, 우리 이만큼 컸어요!’라는 제목으로 2017년 내서마을학교를 마무리하는 자리를 가질 예정입니다. 처음 시도한 마을학교라 서툴렀던 점도 많았습니다. 올해보다 나은 내년을 기대하며 마을학교가 경남 곳곳에서 활짝 꽃피길 기원합니다.

- 이 글은 경남교육매거진 <아이좋아 경남교육 12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아이쿱 조합원으로 가입한 지는 4년이 되었지만 총회나 강좌에만 한 번씩 참석할 뿐 조합원으로서의 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못했었다. 지역에서 이것저것 맡아서 일을 하다 보니 마산 아이쿱의 감사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었고, 아이쿱생협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 채 ‘감사’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감사교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복잡한 회계와 관련된 지식을 얻어 올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가졌었다. 그러나 이틀에 걸친 감사교육을 통해 얻어온 것은 그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것이었다. 매장이 권역별 자회사로 분리되었기 때문에 매장에 대한 감사는 지역조합의 감사범위에서 제외되어 머리 아픈 숫자들로부터 상당부분 벗어날 수 있었고, 그 대신 아이쿱생협 활동 전반에 관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첫째 날은 업무감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교육이 짜여졌다. 1강 ‘아이쿱 주요 정책과 방향’에 관한 강의는 아이쿱생협의 정책에 대해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던 나에겐 매우 인상적인 강의였다. 특히, 아이쿱생협이 사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조직이며, 이 둘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그동안 떨쳐버리지 못했던 조합비에 대한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이어진 ‘업무감사 매뉴얼’ 강의는 실제 감사과정에서 수행해야 할 절차들을 꼼꼼하게 짚어볼 수 있었던 강의였다. 체크리스트 등의 세부적인 내용들을 모두 숙지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지만, 자료집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복습을 염두에 두고 강의를 들었다.

 

둘째 날의 첫 강의 ‘회계감사 매뉴얼’에서는 조합 살림살이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조합비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모든 조합원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명쾌한 강의였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면, ‘매장 운영을 통해 얻는 사업수익으로 조합을 운영하면 될 것을 왜 조합비까지 내게 하여 조합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첫날의 강의를 통해 아이쿱생협이 사업뿐 아니라 운동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운동에 조합원들의 조합비가 사용될 것이라는 짐작을 통해 그 의구심을 씻어 내었다면, 둘째 날의 이 강의를 통해 조합비가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용되며 그 성과는 무엇인지를 알게 됨으로써 조합비 제도에 대한 확신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회계감사 업무 프로세스’ 강의와 ‘감사 사례발표’는 감사의 실제 업무수행에 유용한 내용들이었다. 감사 과정에서 감사가 가져야 할 자세와 이사회와의 관계 등에 대해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자료집에 실린 감사보고서는 바로 눈앞에 닥친 상반기 감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감사교육을 받는 동안, 교육의 내용은 물론이고 간식과 점심 등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준비를 잘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교육이 일주일 간격으로 이틀에 걸쳐 진행되긴 했으나, 이동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하루만에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즉, 수도권과 남부권으로 나누어 두 번에 걸쳐 진행한다면 이동 거리가 짧아져 더 많은 감사들이 참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 일을 제쳐두고 와야 하는 감사들도 하루만 할애하면 되기에 부담이 줄게 될 것이다.

 

청일점이어서 관심도 많이 받고 배려도 많이 받았었다. 그만큼 남성들이 생협 활동에 그다지 많이 참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남성들이 생협 활동을 등한시 하는 이유 중에는 아이쿱생협의 활동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생협이 안전한 식품을 제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농업과 환경을 지키며, 안전한 삶의 기반을 제공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생협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각도 변할 것이라 믿는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생협 조합원이 된 지 4년차, 가입 햇수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지역에서 활동을 좀 하다보니 감사까지 맡게 되었다.

조합원으로 가입할 때 1-2시간의 교육을 받긴 했지만, 생협에 대한 이해는 높지 않았다. 안전한 식품을 믿고 구입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정도가 생협에 대한 내 인식의 전부였다. 더 나아가 생협식품은 친환경농산물이라 비쌀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까지 가지고 있었다.

초기에는 조합비를 거두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었다. 자연드림 매장을 운영해서 얻는 수익은 다 어떻게 하고, 조합원들의 조합비를 계속 받아가느냐는 의문을 가졌었다. 조합비가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오늘 감사교육을 받으면서 아이쿱 생협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내게는 강렬하게 다가왔던 사실은 아이쿱 생협이 사업체와 결사체의 성격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업체로서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결사체로서 '운동'도 함께 진행한다는 것이다.

비로소 조합비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아이쿱 생협은 친환경 식품을 공급하는 사업체일 뿐만 아니라, 농업과 환경을 생각하며 안전한 삶의 기반을 만들어가는 운동단체이기도 하다. 지금 바로 떠올려봐도 GMO완전표시제, 탈핵,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 등의 운동이 떠오를 정도로 많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조합원들의 조합비는 바로 그런 운동에 사용되고 있으며, 아이쿱은 사업과 운동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고자 작은도서관운동과 주민운동에 나름의 에너지를 쏟아왔다. 그리고 이제, 생협운동 또한 지역공동체를 강화하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운동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아무리 가치 있는 일이라도 몸이 하나고 머리가 하나인 이상 그 많은 일들에 다 열심히 참여할 수는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이전보다는 확실히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며, 맡은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끝으로, 지난 20년 동안 이 길을 걸어온 전국의 생협 활동가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7. 6. 20. 22:19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동네약국 약사 할아버지의 '배려'

 

"형민아, 좀 전에 약사 할아버지가 비타민 음료 주실 때 '톡톡톡톡 톡톡톡톡'하고 책상에 두드리고 주셨지? 뭘 하신 것 같애?"

"글쎄, 상했는지 살펴보는 것 아니었을까?"

"박스를 살펴봐 봐. 모양이 변했을걸."

"모서리가 둥글어졌어."

"그렇지? 그럼, 약사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하셨을까?"

"비닐봉지에 담을 때 봉지가 찢어지지 말라고?"

"~ 그렇구나. 아빠는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했네. 그리고 또?"

"모서리에 다칠까봐?"

"그래, 맞아이런 걸 '배려'라고 하는 건데, 그 할아버지가 우리를 배려해 주신거야."

", 맞아."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기침을 많이 하고 목이 아프다고 해서 소아과에 들렀습니다. 처방전을 받아서, 나란히 붙어있는 약국에서 약을 사면서 아이가 비타민음료도 사자고 해서 한 상자를 함께 계산하도록 했습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에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고개를 들어 소리의 출처를 찾으려 했지만, 약사는 이미 미동도 없이 제 손에 들린 지폐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값을 치르고 계산대를 자세히 보니 여덟 모서리가 모두 뭉툭해진 음료 상자가 정히 놓여 있었습니다. '톡톡톡톡'하고 났던 소리는 모서리를 계산대 탁자에 내리찧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비닐봉지에 담긴 물건을 들고 나오며 생각해보니 예전에 같은 종류의 상자 모서리에 팔뚝을 긁혔던 기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이 글은 2009년에 퇴임하신 아침나라 신경득 교수님 퇴임기념문집에 실렸던 글입니다.

교수님께 판 글감

  곡우(穀雨) 아침부터 봄 가뭄을 적시는 단비가 내린다. 아파트 뒤편으로 흐르는 실개천에 황톳물이 제법 붉다. 4월 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야했던 산불 발생 보도는 장롱에 들어갔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기 전까지는 듣지 않아도 되리라.

  전날 반팔티셔츠를 입고 외출을 하며 지난 달까지만해도 눈이 내리더니 봄도 없이 벌써 여름이 왔다며 투덜거렸는데, 오늘 내리는 비는 우산 없이 맨몸으로 맞기에는 여전히 차갑다.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채소장수 할머니는 오늘도 장사를 나가려는지 빗속에 서 있는 수레까지 그 차가운 비를 맞고 왔다 갔다 하며 채소를 쟁여 담고 있다.

  밤늦게 학원 강의를 마치고 들어오면 항상 그 시간에 저만큼 앞서서 상반신을 뒤로 젖힌 채로 빈 수레를 힘겹게 밀고 가던 그 할머니다. 봄비 치고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은막에 비친 낡은 필름의 흐린 영상 같다고 생각하며 나는 몇 해 전의 일을 떠올린다.

 

  고인 빗물의 가장자리를 따라 송홧가루가 노란 테를 이루고 있었고, 맨살에 닿는 빗물이 약간 차갑게 느껴지던 때였으니 그 때도 곡우(穀雨) 전후쯤이었을 것이다.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던 때라 학교에 자주 갔었고, 점심시간이면 교수님을 모시고 인근의 맛집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그 날도 교수님과 교수님 연구실에 있던 학부생을 태우고 문산의 어느 아구탕집으로 가고 있었다. 맑은 날 같으면 가좌동에서 호탄동을 지나 문산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국도를 지날 때 차창을 내리고 찔레꽃 향기에 취해 탄성을 질러대었겠지만 그날은 비가 오고 있었기에 창문을 열 수 없어 찔레꽃은 그저 향기 없는 하얀 꽃일 뿐이었다. 비에 젖는 하얀 꽃이 애처롭다고 여기며 문산읍으로 들어섰다.

  문산읍 사거리를 지나 한적한 골목으로 돌아 들어갈 때였다. 체구가 작은 할머니 한 분이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로 폐지가 가득 담긴 작은 손수레를 밀며 가고 있었고, 그 뒤에서 예닐곱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우산을 들어 할머니의 굽은 등허리를 씌워주며 따라가고 있었다. 우산은 작아 머리까지 미치지 못하고 머리보다 더 높게 솟은 등허리만을 가려줄 뿐이었으며, 그 여자아이는 빗물이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릴 만큼 이미 많이 젖어 있었다.

  넓지 않은 골목길이라 자동차 속도를 줄이며 뒷좌석에 앉아있던 교수님께 조금 전의 광경을 말씀드렸더니 교수님께서는 그 광경에 대해 되물으시며 관심을 드러내시는 것이었다.(교수님은 시력이 매우 떨어져서 앞을 보실 수 없었다.) 나는 내친 김에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까지 말씀드렸다.

  “저런 할머니들 보면 평생을 김밥 팔아서 모은 전 재산이나 폐지를 팔아 모은 수 억 원을 어느 대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할머니들이 생각납니다. 김밥이나 폐지 팔아서 수 억 원을 만들려면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참 대단한 일이죠. 그런데 대학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그 장학금 받아 우수한 성적에 대학 졸업해서 판사 검사 되고 의사 변호사 되면 모두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일하지, 없는 사람들 위해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차라리 똑 같이 김밥 팔고 폐지 줍는 다른 노인들 - 그들 대부분은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빗물 새는 지붕 하나 고치지 못하고 하루 세 때 끼니 이을 걱정부터 해야 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부했으면 얼마나 좋게 쓰였겠습니까?”

  마침 찾던 음식점 앞에 도착하여 길가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구탕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교수님께서는 조금 전의 그 광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계시는 듯했다. 잠시 뒤 교수님은 그 날 내가 보았던 광경과 그 광경을 보고 떠올린 내 생각이 좋은 글감이 될 수 있겠다 하시며 그것을 팔지 않겠느냐고 물으셨다.

  팔고 사고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글감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이런 것도 지적 재산권에 들어가나 하는 의아심에 머뭇거리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재차 물으셔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주문했던 아구탕이 나와서 그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이 났지만 어쨌든 그 날 점심값을 교수님이 내셨으니 그 글감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교수님께 넘긴 셈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여섯 해가 흘렀다. 교수님은 그 내용으로 글을 쓰시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광경만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계셨던지 오랜 만에 찾아뵈었던 지난 겨울에도 그 이야기를 언급하셨다.

  우리 사회는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좁은 시골 읍내에서 한정된 환자들을 두고 병원들이 경쟁을 하고, 한 학교 앞에서 두 세 개의 학원이 더 많은 수강생을 유치하려고 경쟁한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쪽은 다음 경쟁자가 나타날 때까지 성업을 이어가고, 경쟁에서 패한 쪽은 막대한 시설 투자비를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고 문을 닫아야 한다. 경쟁이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켜 소비자의 구매를 촉진하게 되면 전체 시장 규모가 확대되어 모두 살아남는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해서 안 아픈 사람이 병원을 찾을 리 없고, 한 개면 족한 휴대폰을 값이 싸다고 두 개 세 개씩 살 리도 없기에 결국 정해진 파이를 더 잘게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가 큰 조각을 가져가면 누군가는 작은 조각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심지어 누군가는 굶어야 하는 것이 바로 경쟁 사회인 것이다.

  폐지를 주워다 팔거나 길거리에서 김밥을 파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폐지를 주워다 팔아야 생계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은 여럿인데 배출되는 폐지의 양은 일정하다. 결국 내가 많이 주워다 팔면 다른 사람은 적게 주워간다. 물론 더 부지런한 사람이 더 많이 주워다 팔 수 있다. 그렇게 ‘더 부지런한 사람’은 부지런히 주워다 팔아서 수 억 원을 모았을 것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수 억 원을 모으는 동안에 폐지 줍는 일 외에는 달리 생계를 이을 길이 없는 ‘덜 부지런한 사람’들은 근근이 생존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정정당당한 경쟁이었으니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모은 재산을 대학에 기부를 했다한다.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업종은 ‘배운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뼈 빠지게 거리를 돌아다녀야 형편없는 수입이나마 올릴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몫으로 돌아갔어야 할 재화가 ‘기부’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상류사회로 빠져나가버린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밑바닥 계층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나누어야 할 파이는 더 작아져 버렸다. 폐지나 김밥 팔아서 모은 재산을 대학에 기부했다는 뉴스가 마냥 훈훈한 미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태 전, 어느 인터넷 신문에 한 대학교가 20여 년 동안 교내에서 김밥과 꽈배기 도넛을 팔아오던 김밥 할머니를 학교에서 내쫓았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김밥 할머니’들의 장학금을 가장 많이 받았을 그 학교가 내린 결정이 너무 몰인정하여 씁쓸했고, 김밥 파는 할머니의 처지를 같은 ‘김밥 할머니’가 몰라주는데 어느 누구에게 기대할 수 있겠나 하는 마음에 더욱 씁쓸했다.

 
  이틀을 끌며 이 글을 쓰는 동안에 실개천의 황톳물은 맑아져 있다.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돌아오는 길 저만치서 채소장수 할머니가 손수레를 밀며 마주 온다. 할머니의 곱게 화장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 할머니는 적어도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어 가면서까지 돈 모아다 대학에 기부할 할머니는 아닐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교수님께 팔았던 글감으로 글을 써버렸다. 지적 재산권을 가진 교수님의 허락도 없이 글감을 사용했으니 벌금을 물어야 할까? 벌금을 물어야 한다면, 교수님과 자주 가던 풍어횟집이 좋을 듯하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6. 12. 4. 06:05 세상 비틀기

자유당 정권말기,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던 한국 사회를 시골 초등학교 5학년 2반 교실로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제목의 소설은 지금도 중학생 권장도서목록에 오르고 있다.

서울에서 전학온 한병태가 배정된 5학년 2반에는 엄석대라는 반장이 있다. 담임 선생님은 엄석대를 공부도 잘하고 통솔력도 뛰어난 모범생으로 여기고 있기에 그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다.
그러나 엄석대의 실상은 그런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두세 살 많은 엄석대는 아이들 위에 군림하며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런 실상을 알게 된 한병태가 기회를 엿보다가 엄석대가 윤병조의 라이터를 빼앗는 것을 목격하고는 담임 선생님에게 일러 바친다. 담임 선생님이 조사를 하지만, 엄석대에 대한 담임의 절대적 신뢰로 인해 오히려 한병태만 나쁜 아이로 찍히게 된다. 
이른바 '윤병조 라이터 사건' 이후로 한병태는 엄석대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게 되고 급기야 굴복하고 만다. 그 이후부터 엄석대가 한병태에게 베풀어주는 '굴종의 대가'는 너무나 달콤하였기에, 한병태는 엄석대가 시험지에 다른 아이와 이름을 바꿔 적는 방법으로 전교 1등을 유지해 왔다는 결정적 비리를 알고도 눈 감아 버린다. 
결국 6학년이 되어 새로운 담임에 의해 엄석대의 실상이 밝혀지게 되고, 엄석대는 학교를 뛰쳐나가게 된다.

자유당 정권이 끝난 지 반세기도 더 지났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5학년 2반 교실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보수정당의 절대적 리더로 추앙받으며 대통령으로 등극한 박근혜. 불과 몇 달 전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몇 줄의 정책보다는 박근혜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 한 장을 내어 거는 것이 당선에 도움이 될 정도로 보수층의 신뢰를 한몸에 받던 박근혜.
그러나 박근혜의 실상은 무능과 부도덕 그 자체였다. 개인적으로 은혜를 입은 최순실이라는 비선실세로 하여금 온갖 이권에 개입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는가 하면 인사뿐 아니라 국가정책에까지 개입하게 했다는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공부 잘하고 통솔력 있는 모범생으로 포장되어 있던 엄석대의 부패한 실상이 드러나듯 박근혜의 온갖 추악한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 언론에 회자되는 범죄만으로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주말이면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부당한 힘과 부정한 방법으로 고급승용차를 굴릴 만큼 출세한 엄석대가 형사들에게 끌려가는 것으로 결말을 지음으로써 결국에는 불의가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작가 이문열. 그를 엄석대의 부정 부패를 방조해 버리는 나약한 한병태쯤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최근의 그를 보면 한병태에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이문열 작가는 한 일간지에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서 울려퍼지는 박근혜 퇴진의 촛불민심을 폄훼하는 칼럼을 실었다. 광화문에 모인 인원이 전체 국민의 3%에 불과하기에 그 3%가 외치는 '박근혜 퇴진'이 민심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일시에 촛불을 끄고 켜는 모습에서 북한의 아리랑축전이 떠오른다며 색깔론을 갖다 붙이기도 했다.
굴종의 대가가 얼마나 달콤한가를 알아버려서 그런 것일까? 그는 박근혜 퇴진을 바라는 여론이 70%에 육박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외면한 채, 광화문광장에 모인 인원이 전체국민의 3%밖에 안 되기에 그것을 민심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민심을 왜곡해 가면서까지 피의자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옹위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이문열은 한병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5학년 2반의 엄석대라 해야할 것이다.
posted by 내서의 이우완
2016. 12. 3. 14:12 우리말 들여다 보기
윤석열? [윤서결]
윤석렬? [윤성녈]

언론사마다 표기가 다르다.
열/렬. 어떻게 쓰든 별 차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발음을 해보면 완전 다른 이름이다.
'기뻐할 열', '더울 열' 등 몇몇 한자를 빼고는 대부분 [렬/열]로 다 표기와 발음이 가능하다.
그러나 첫 음절이 아닌 경우에는 '렬'로 표기한다. 둘째 음절 이후에서 '열'로 표기하는 경우는 '서열', '선열'과 같이 앞 음절의 끝에 받침이 없거나 'ㄴ'받침이 올 때이다. 어느 언론에서도, 인명사전에서도 특검수사부장의 한자 이름을 써놓지 않았으니 어떤 한자를 쓰는지 모르지만 이름에 쓰이는 일반적인 한자라고 본다면, 윤석렬의 경우 받침에 'ㄱ'이 왔으므로 '렬'로 쓰는 것이 맞다.
'열'이라 쓰든 '렬'이라 쓰든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
중요하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잘못 부르는 걸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애매한 감정을 이해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우환아~'라고 부른다면 머리를 떠나 가슴이 먼저 벽을 쌓아 올리게 된다.
앞으로 120일 혹은 150일에 걸쳐 박근혜 게이트를 수사할 수사부장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도 특검을 응원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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